가난한 이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교황의 업적과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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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1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마음 한켠이 먹먹해지는 걸 숨기기 어렵네요.
오늘은 세상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과 업적을 되짚어보며,
왜 그분이 ‘가난한 이들의 친구’, ‘가장 낮은 자의 목소리를 대변한 교황’으로 불리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최초의 ‘비유럽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남미 출신 교황으로 선출됐는데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자녀였습니다.
기존 교황들이 대부분 이탈리아나 유럽 출신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선출은 매우 파격적이었지요.
그는 로마의 주교직을 넘어, 전 세계적인 교회의 얼굴로 거듭났습니다.


수도자 출신, 검소한 삶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소속의 수도자 출신이었는데요.
그래서인지 교황이 된 이후에도 격식보다 본질을 중시했습니다.
고급 승용차 대신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했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면 그들과 같이 살아봐야 한다”고 말했지요.
심지어 교황궁 생활 대신 일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며 소탈한 삶을 실천했습니다.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아르헨티나 빈민촌에서부터 시작된 사명

사제가 되기 전부터 그는 마약과 폭력이 가득한 빈민촌을 드나들며 봉사했는데요.
그곳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과 함께하며, 이미 당시부터 ‘서민의 사제’로 불렸다고 합니다.
교황이 된 후에도 이러한 철학은 계속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이라는 직함을 넘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존재였던 것이죠.


개혁의 아이콘

그는 바티칸 내부의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와 은행 시스템 개혁에도 나섰습니다.
또한 동성애자, 이혼 후 재혼자 등 교회 내에서 소외되던 사람들을 향해
“내가 누구길래 그들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로 따뜻한 메시지를 전했지요.
이러한 발언은 보수적인 교회 내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전한 평화의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그리고 한국까지 방문했는데요.
그는 분쟁과 아픔이 있는 곳마다 찾아가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습니다.
2014년 방한 당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을 위로했고,
음성 꽃동네에서는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가 사랑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의전이 아닌, 진심 어린 인간적인 만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교황

2001년, 그는 에이즈 환자들의 발을 씻어주고 입을 맞췄는데요.
이는 누구나 하기 힘든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또한 방탄차 대신 일반차를 타고 다니며,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신의 뜻이다”라며 담담히 말했지요.
그의 삶에는 언제나 ‘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겸손한 태도가 녹아 있었습니다.


교황님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며

아래 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 활동과 발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며, 남긴 메시지를 함께 기억하면 좋겠네요.

 
| 출생 | 1936 12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
| 교황 즉위 | 2013 3 13일, 제266대 교황 선출 |
| 주요 메시지 | “내가 누구길래 그들을 심판하겠습니까?” |
| 봉사 활동 | 아르헨티나 빈민촌, 에이즈 환자 씻기 |
| 개혁 활동 | 바티칸 은행 개혁, 보수와 진보의 조화 시도 |
| 한국 방문 | 2014년, 광화문 미사와 세월호 유족 위로, 꽃동네 방문 |
| 주요 발언 | “신의 뜻이면 어떤 일도 받아들이겠다” |
| 별세 | 2025 4 21일, 향년 88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은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데요.
그가 남긴 메시지와 정신은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낮은 자를 위한 교황’, ‘사랑과 용서의 사람’으로 기억될 프란치스코 교황,
그분의 명복을 빌며, 우리도 삶 속에서 작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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